현의 변주는 삶의 여행을 위한 희망 작업이다 .

전시 퍼포먼스 "현의 변주"......<서울문화재단 시각예술부분 선정작>

신용구 의 전시 퍼포먼스 순환 , 꿈, 바람을 안고 가다, 미로 속의 실타래에 이은 다섯 번째 테마

“현의 변주” 청계천의 아름다운 공간으로 초대 합니다 .

 

 

시간 : 4월 18일 / 19일 / 20일 p.m. 7:30

장소 : 청계천 청계광장 - 광통교

참여작가 : 신용구 (퍼포먼스 아티스트)

            권수임(현대무용) / 신미아 (퍼포먼스 아티스트) / 정정호(영상작가) / 손성훈 (음악) / 이나경 (의상)

후원 : 서울문화재단

            타이포그램 / 아라가야 / 문화마을 들소리 /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 / 소리연구소

관람비 : 무료

 

 

1. 전시 퍼포먼스의 컨셉

청계천이라는 , 도시 속의 자연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으로 ‘인간과 자연’이라는 큰 테마 안에서 인간의 삶

을 실타래라는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한 설치&퍼포먼스 공연이다.

2. 작품내용

“현의 변주는 바로 내 삶의 여정”

- 시지프스처럼 저 산의 정점을 향해 끊임없이 욕망의 덩어리를 굴리다

- 좌절, 그 깊은 어두움과 만나다

-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 무지개는 바로 내 안에…

- 다시 삶의 희망을 찾아 떠나다.

 

시지프스는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날라야만 하는 형벌을 신들로부터 받았다.

이 바위는 산꼭대기에 도달할라치면 바로 굴러 떨어져, 시지프스는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야 하는

작업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 무익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고 신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시지프스가 혼신의 힘으로 굴리고 있는 신의 저주 - 그 거대한 바위덩어리는 바로 우리가 매 순간 대면해야

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다. 그가 바위를 굴려 올리듯, 우리는 우리 앞에 닥치는 갖가지 어려움들을 극복하

고자 용쓰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통스런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한편, 그 상황을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는 반란을 꿈꾸며 살아간다.

우리 삶의 욕망 덩어리이며 끊임없이 우리를 좌절시키는 저 어두움의 바위 덩어리 .

우리 삶에 드리워진 그 무거운 그림자를 뛰어넘어 무지개를 찾듯이 , 이제 청계천에서 꿈과 희망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끊임없이 우리를 좌절시킨다고 해도 우리가 바라는 그 무지개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순간 , 그 빛은 우리 마음속에서 밝게 눈뜰 것이다.

승화된 삶의 기쁨을 우리 안에서 찾게 되는 그 날을 위해 , 오늘도 우리는 희망을 찾아 내 마음속으로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3. <현의 변주>는 어떤 작품? (Review)

현의 변주

한 미 애 (미술학 박사 / 전시 기획)

예술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추구한다는 견해에 반론을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 작가들은 누구나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은 거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으며 , 미술 역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게 된다. 유화만 하더라

도 손 떨림에 따라 터치 하나하나가 다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차르트 때의 작곡가들 중 잘 알려진 사람은 모차르트밖에 없다 . 그 위로는 하

이든이 있고 아래로는 베토벤이 있지만, 모차르트 때의 음악과는 작풍과 시대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 때의 음악은 그 자신의 음악을 비롯해서 거의 비슷비슷한 느낌을 준다 . 그 시대 음악을 가르는 것

이 꾸밈음 몇 개와 작품의 기타 구성 두어 가지인데, 모차르트가 그것에 뛰어났기 때문에 지금 기억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는 영상 설치 퍼포먼스 작가를 떠올릴 때 , 신 용구 를 추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 그

는 학창시절부터 줄곧 이미지 퍼포먼스를 해오고 있다.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논문으로 발표한

것은 「퍼포먼스 예술에서 신체를 통한 생명 이미지 표현에 관한 연구」이다.

그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생명의 이미지를 작업의 모티브로 인식하고 퍼포먼스가 지닌 특성과 제작 과정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무한의 가능성 중에서 최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해 왔다 . 특히 그

는 작품에 활용되는 소재를 거의 손수 제작하여 사용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손놀림 자체만으로

도 예술의 한 장르에 근접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의 탁월성은 , 이념과 형상이 고양된 용해 상태로 어우러졌을 때 나타나는 그 친밀도와 통일성에 달려있

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각적 실현을 발견하는 이념, 즉 예술적으로 구현된 이념을 철학자 헤겔은 ‘이념상

Ideal’이라 부른다.

신용구 는 이미지의 바탕이 여전히 하나의 이미지이며 ,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스펙터클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으며 예술에 대한 키치적인 감상을 불

러일으켜, 일종의 교묘한 최면 같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의 작품은 같은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들에 비해 극히 정적 (靜的)이다. 정적인 동작을 통하여 의도적으로

긴장을 팽팽하게 조성한다. 냉혹하고 잔인할 만큼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을 조금씩 있는 그

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동작은 수많은 움직임을 하나의 움직임으로 집중하여 완결시킨 하나의

경지이자 가장 간소한 형태로서 가장 많은 의미를 담아내며, 가장 소극적인 것으로서 가장 적극적인 것을 전

개한다. 이는 변화 속의 불변, 불변 속의 변화라는 동양의 역(易)사상과도 통하며 그것이야말로 이미지 그대

로의 순수한 의미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에 작가는 「현의 변주」라는 주제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 변주란 한 가지 선율을 주제(아

리아)로 설정하고 여러 모습으로 변형시키는 기법이다 . 즉 주제와 여러 개의 변주로 이어진 변주곡은 요리에

비유할 수 있다. 밥을 예로 들어보자. 밥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콩밥, 보리밥, 콩나물밥 등 창조적인 요리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하게 변주를 해도 거기엔 항상 밥의 맛, 즉 주제는 살아 있다.

신용구 는 그동안 많은 전시를 통해 일관적으로 자기 목적에 갇혀 그것을 풀어내며 이야기하기 위해 대단히

서술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다 . 그의 일관된 작품에서는 무엇인가 강렬하게 또 치열

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 현의 변주는 희망을 찾는 작업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어둡고 복잡한 현실 세계, 우리

들은 어쩌면 그리스 신화에서 크레타 섬의 미궁에 갇힌 테세우스와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미로의 공간에서 실타래를 잡고 미로 속을 헤쳐 나오듯이 우리들도 희망을 상징하는 실타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세우스에게 실타래와 검을 건네준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처럼 작가의 실타래에서 풀어져

나온 실들이 현을 이루고 그 현은 섬세한 움직임과 리듬 등의 요소들과 하나가 되어 선율을 이루어낸다. 현의

변주를 통해 현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인연의 줄과 인간의 삶, 그리고 내면의 그리움… 그 회복을 위한 모색의

시도는 영상, 설치, 퍼포먼스로 형상화된다.

이번 전시는 우리들 삶의 터전으로 애환이 응집되어 있는 청계천이라는 역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 작

가는 꿈과 희망과 함께 인간을 상징하는 일곱 개의 무지개 색 구球를 제작하여 그 구를 굴리며 퍼포먼스를 수

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구는 또 다른 변주이다 . 그의 작품은 이처럼 다양한 변주를 통하여 사회적 통념이나 기존 질서와 새로운

코드와 관점을 견주면서 조심스레 역사의 현을 변주하는 이미지로 전개될 것이다. 한편으로 그러한 시도를

통하여 시각예술을 기본으로 다중매체와 공간감을 확대하여 새로운 공연의 패러다임을 창조하려는 작가의

끊임없는 의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게 될 것이다.